[2000년 3월, ‘도토리 갑옷 사건’의 전말]
[2000년 3월, ‘도토리 갑옷 사건’의 전말]
Blog Article
2000년 3월 어느 날, 팝리니지에 기묘한 글이 올라왔다.
“도토리 300개면 갑옷 드립니다. 진지합니다.”
처음엔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도토리라니, 갑옷이라니. 그러나 글쓴이의 태도는 끝까지 진지했다.
그는 도토리를 수집하는 데 깊은 의미가 있다며, 일정 수량을 모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갑옷’으로 교환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이 글은 곧 팝리니지 내에서 ‘도토리 갑옷 사건’이라 불리게 되었다. 유저들은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도토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팝리니지 게시판엔 “도토리 어디서 많이 나오나요?”, “오늘 50개 모았음” 같은 글들이 올라왔고, 심지어 도토리 수급 전담 파티도 생겼다. 글쓴이는 매일 수집된 도토리 개수를 집계해가며 공지를 올렸고, 약속한 수량이 모이자 결국 ‘도토리 갑옷 수여식’을 열었다.
수여식은 마을 한복판에서 진행됐다. 많은 유저들이 모여 환호하는 가운데, 주인공은 직접 제작한 갑옷을 입고 도토리 트로피를 들고 등장했다. 그 장면은 순식간에 스크린샷으로 남겨졌고, 팝리니지 베스트 게시글로 등극했다.
이후 팝리니지에는 다양한 도토리 파생 문화가 생겨났다.
‘도토리 마법 지팡이’, ‘도토리 투구’, 심지어 ‘도토리 금고’까지 생겨났으며, 유저들은 서로 도토리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다. 일부 유저는 도토리를 고유 화폐처럼 사용하기도 했고, “도토리로는 배신하지 말자”라는 규칙까지 생겨났다.
흥미로운 점은, 이 도토리 이벤트를 통해 실제로 유저 간의 분쟁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경쟁보다는 유쾌한 놀이가 우선되었고, 팝리니지는 이 현상을 “도토리 효과”라고 칭하며 칼럼을 따로 작성하기도 했다.
사건을 처음 만든 유저는 어느 날 조용히 은퇴 글을 남겼다.
“이제 도토리는 충분히 모인 것 같아요. 갑옷은 잘 입으셨길.”
이 한 줄의 글에 수많은 유저들이 댓글을 달았다.
“잊지 않을게요, 도토리 대장님.”
지금도 팝리니지에서는 가끔 도토리 갑옷 스크린샷이 회자된다. 누군가는 장난이었고, 누군가는 추억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건 하나였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따뜻한 장난의 시작은… 역시 팝리니지였다.